억새들은 아마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세상에 저항하지 않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순리를 선택한 것 같았다. 아라이가 자연의 순리를 운명처럼 따라온 것처럼......
엄마거미로서 일생 중 가장 중요했던 산란과 알들의 위장 작업까지 마친 아라이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아라이는 한참 동안 알집을 바라보다가 알집위로 느릿느릿 이동해 갔다. 그 걸음걸이는 흐느적거렸지만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보였다.
알집 위에 도착한 아라이는 최대한 다리를 벌려 알집을 품안에 안았다.
아라이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알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아라이는 품속에 있는 알들을 바라보았다. 과거 엄마의 품속에서 보았던 미지의 세계.
이제는 반대로 내 품속의 아이들을 보고 있다. 아슴아슴한 시간의 연속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밖에 누구 있어요?”
알집 안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가 혼미한 정신을 깨웠다.
“누구니?”
“엄마예요?. ”
“그래, 네 엄마야.”
“엄마, 그런데 너무 추워요”
“그래 좀 추울 거야, 엄마가 따뜻하게 해줄게”
아라이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밀착해 알집을 끌어안으며, 따뜻한 체온을 전달해 주었다.
“이제 따뜻하지?”
“네 엄마 따뜻해요. 엄마의 품이 최고예요”
아라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온갖 애를 쓰고 있다.
“엄마, 늘 한 결 같이 안아 주세요”
“그래 내 새끼들아, 그렇게 할게”
아라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간다. 가물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아라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알들을 품에 안고 있다. 긴 밤 내내 아라이는 혼신의 힘으로 알집을 보호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아이들을 지키려는 아라이의 눈물겨운 모성애에 잣나무 아주머니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살그머니 힘을 놓았다. 다시 기운을 회복해 힘을 주어 알들에게 체온을 전달해 주려는 아라이의 가련함 때문에 잣나무 아주머니는 하마터면 울음이 날 뻔하였다.
아라이의 배는 주름지고 홀쭉해져 야위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어미가 혼미해가는 정신 속에서도 새끼들을 위한 위대한 모성애 발휘하는 모습을 보자 잣나무 아주머니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였다. 나무에 매달렸던 아라이의 몸이 휘청거린다. 기력이 떨어진 아라이는 부는 바람에 더 이상 알집을 잡고 버틸 힘이 없었다. 한 개(여덟개의 다리 중)의 다리만이 알집 위 거미줄에 매달린 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아라이 정신차려”
잣나무 아주머니의 위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주머니”
대답만 할 뿐 아라이의 몸은 조금도 움직임이 없었다. 모든 기력이 소진된 아라이는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라이 네가 정신 차려야 알들도 살 수 있지?”
“아주머니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아라이는 한 동안 말을 멈추다가 더 이상의 말을 맺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아라이, 아라이”
잣나무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더 이상 아라이는 말이 없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떨어진 아라이는 그렇게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신의 운명을 따르고 자연으로 아라이는 조용히 죽어갔던 것이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