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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 거미 이야기<9탄 사랑을 이루다>

 

회색빛 하늘에 매서운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갔다.

 “안녕, 난 클락이라고 해”
 아라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클락을 바라보았다. 아라이의 마음속을 점령해 버린 캔에 대한 그리움과 캔이 아닌 허탈감이 아라이의 마음을 양분해 버리고 있다는 것을 클락은 알 수 없었다.
 제철보다 늦게 심었던 탓에 이제야 수염이 부쩍 자란 옥수수가 눈앞에 들어온다. 키도 제법 커서 이제 웬만한 사람보다도 더 크게 자랐다. 멀대처럼 자란 옥수수는 두어 세 개(자식 인심 좀 풍족하게 쓰지.......)

 
아라이도 몸에 묻은 물방울을 먼저 걷어낼 찰나, 빙그레 웃는 흐릿한 물체를 보았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캔의 모습이 확대경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캔도 웃으며 아라이를 맞이하였다.
 “안녕 캔”
 “안녕 아라이”
 “캔, 그 동안 어디 있었어. 얼마나 보고 싶었다구”
 아라이는 흐느끼듯 말하였다. 캔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싶었다. 


 “이곳으로 너를 보내고, 난 담장 위에 있다가 갑자기 부는 역풍에 담장 너머로 날아가게 되었어. 그 곳에서 거처를 만들고 너를 찾았지만 니 흔적을 알 수 없었지. 그리고 네가 성장하기만을 기다렸다. 네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나를 찾는 페르몬을 풍겨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
 캔의 말을 듣던 아라이는 이제야 이해가 가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계절이 무르익어 가면서 어느새 가을이 익어간다. 햇살이 따갑고 습도는 낮다. 아라이의 거미그물엔 조용한 평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오늘은 아라이의 거미그물에 또 다른 된장잠자리가 걸렸다. 아라이는 신속하게 세로줄을 타고 내려와 잠자리의 급소를 엄니로 꽂고 독액과 소화액을 주입한다. 잠자리는 서서히 가사상태로 들어갔다. 결박된 잠자리를 거미그물 중앙에 매달아 놓았다. 아직은 배가 고프지 않으니 배고플 때 먹을 심산이다.


 
가을이 계절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벼이삭이 출렁거리는 황금들판에선 벼 낟알을 콤바인이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곡식이 풍성한 시기는 동물들에겐 사랑의 계절이다.
 아라이는 황금색의 거미그물로 신혼방을 만들고 사랑하는 캔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수컷들의 구애도 마치 본능과도 같았다.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경쟁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같다. 여러 마리의 수컷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것은 그 중 힘이 센 클락이었지만 늘 아라이에게 퇴짜를 맞았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싸늘해졌다. 아침 안개에 세상이 잠들어 보였다.
 오늘은 허기진 상태로 먹잇감을 기다리던 아라이에게 클락이 구애를 해 온다. 클락의 구애가 전 보다 더 적극적이고 대범하다.
 아라이는 거미그물을 당기면서 접근해 오는 수컷의 행동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았다. 캔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클락을 멀리 쫓아 버리는 것보다 이 기회에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감지하지 못한 클락은 아라이에게 구애의 신호를 보내며,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라이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클락이 접근해 오길 기다렸다. 클락은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아라이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클락은 청혼 승낙이라도 받은 듯 들뜬 마음에 성급하게 아라이에게 접근하였다.
 아라이가 사냥할 수 있는 거리까지 클락이 접근하자 아라이는 재빠르게 달려들어 클락의 급소를 물었다. 결국 클락은 사랑도 나누지 못하고 아라이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캔과 다른 수컷들도 움찔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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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떨어지면서 먹잇감도 줄어들었다. 이번엔 캔이 용기를 내어 거미그물을 당겨 구애의 신호를 보냈다. 아라이 역시 캔의 구애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더 이상 캔과의 거리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캔은 조심스럽게 거미그물을 따라 아라이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캔이 당긴 거미그물의 진동이 아라이의 발끝을 통해 금형기관에 전달되었다. 사랑이 담겨있는 신호는 곧바로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전달되었다. 아라이는 캔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캔은 거미그물을 타고 아라이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아라이의 배 뒤쪽 실젖 부근으로 접근을 한 뒤, 앞쪽의 더듬이다리로 거미그물을 튕기듯 사랑의 신호를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으로 보내면서 아라이에게 접근해 갔다.


 어느새 캔의 더듬이다리가 아라이의 다리까지 터치하면서 아라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이동해 간 캔은 이미 정액을 채우고 있는 더듬이다리 기관을 이용해 아라이의 외부생식기에 삽입하였다. 캔의 유전정보를 담긴 유전자들이 아라이의 생식기관으로 흘러 들어갔다. 비로서 캔과 아라이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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