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단풍처럼 익듯이 아라이의 몸 색깔도 점점 더 짙어간다. 별이 높고 성글다. 제법 매서워진 바람을 통해 이제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아라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알을 낳아야 해”
“어디가 좋을까?”
“저기 처마 밑이 좋을까?”
“엄마라면 어떤 장소를 선택하겠어요?”
엄마의 말 대신 찬바람만이 휭 하니 불었다. 아라이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음을 느끼고 거미그물을 타고 가까운 잣나무 곁으로 이동해 갔다.
“뾰족한 잎 때문에 인간들이나, 새들로부터 안전하게 우리 새끼들을 잘 지켜주실 꺼야”
아라이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잣나무아주머니 곁에 제 아이들의 알들을 낳고 싶어요. 부탁드려요”
“부탁이라니 당연히 내가 돌봐 줘야지.”
아주머니라면 우리 아이들의 훌륭한 보호자이며, 보모 역할까지 잘 해주실 꺼라, 아라이는 생각하였다.
구름한 점 없던 하늘에 환한 미소를 띤 엄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잣나무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엄마의 무한한 사랑처럼 느껴졌다. 아라이는 큰 시름을 덜게 되었다.
산란 위치가 너무 낮으면 이듬해 봄에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바람을 타고 분산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너무 높은 곳에 산란을 하면 겨울 동안에 다른 천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아라이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여 산란 위치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아라이는 햇볕이 잘 들고 모진 바람에도 외부 영향이 적게 미치는 나뭇가지 바로 밑으로 아라이는 최적의 산란처로 잡았다.
아라이는 터 닦기 공사부터 진행하였다. 튼튼하면서도 강력한 거미줄을 실젖기관을 통해 연실 뿜기 시작하였다. 지그재그 형태로 서로 엇갈려 가기도 하고 이어가기도 하며, 침대보와 같은 깔개를 견고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라이는 벌써 세 시간 이상을 깔개를 만들고 있다. 무서우리 만큼 강한 인내심으로 반복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심호홉을 한번하고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산란처로 돌아왔다. 푹신한 침대보는 새의 둥지보다 안전해 보였다.
산란에 대한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생식공을 통해 한 개, 두 개 아니 수십 개의 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그 수가 무려 오백여개가 넘었다. 캔과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찢어지는 듯 한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아라이의 눈물이 되어 흘렀다.
“저도 이제 엄마가 되었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흐느끼는 아라이 곁에 하늬바람이 엄마의 다정한 손길처럼 다가온다. 엄마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산란을 마친 아라이는 마지막 알까지 나왔는가 확인을 한 후, 잠시의 머무름도 없이 또 다시 거미줄을 꺼내어 산란한 알들 위를 거미줄로 포장하듯 갈무리를 하고 있었다.
살갗을 에는 겨울바람에도 아라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리지 않고 말없이 그 운명을 따르고 있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쉬고 아라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밤사이에 알을 낳았네”
잣나무아줌마가 아라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고생 많이 했어, 좀 쉬지 그래”
“제겐 시간이 별로 없어요”
“시간이 없다니?”
“제 생명의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더 남아있거든요”
“또 해야 할 일이 있다니?”
“두고 보시면 알아요”
“참 아줌마의 나무껍질이 필요한데 이용해도 되나요?”
“물론이지...
아라이는 아줌마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되뇌이면서 나무껍질 하나를 혼신의 힘을 다해 작은 입으로 물어뜯었다. 좀처럼 나무껍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하여 나무껍질을 물었다. 간신히 껍질이 떨어져 나왔다.
“이 정도면 되겠지?”
아라이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라이의 홀쭉해진 배는 이미 산란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고, 열두 시간이 넘는 산란처 만들기에 몸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었지만, 아라이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떨어진 껍질 조각을 점액성이 있는 거미줄을 이용해 알집 위에 위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한 개의 나무껍질이라도 더 뜯어내어 자식들의 알집을 위장하려는 눈물겨운 사투를 보고, 잣나무 아주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라이의 모성애에 코끝이 찡하게 저려옴을 느끼게 되었다.
“아라이. 좀 쉬면서 하지.....”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