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선물용으로 이용된 문화는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일상화된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실용품으로 여름철에 필요한 것과 더불어 저렴하면서도 부채에 사진이나 그림을 활용한 홍보용으로 활용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농산물 홍보용으로 인기 높은 부채 농업 관련 업체에서 부채를 홍보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과거 농약사, 비료회사, 종묘사 등의 업체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부채를 선물하곤 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는 그 부채가 농가에서 매우 요긴하게 사용됐다. 농가에서는 선물 받은 부채를 무더운 여름날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 외에 모기를 쫒고, 불을 지필 때는 물론 음식을 덮는 용도로까지 사용했다. 발간된 <팜앤마켓매거진 8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잇습니다.
도자기陶瓷器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로 도기와 자기 및 사기, 질기를 통틀어 도자기라고 한다. 도기는 1,300℃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것이며, 자기는 1,300~1,500℃에서 구운 것이다. 사기沙器는 ‘잔모래沙가 섞인 백토로 구워 만든 그릇器이며, 질그릇은 진흙을 재료로 하여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도자기에 대해 사기砂器 또는 사기沙器와 자기를 혼용했다. 조선초기에는 사기와 칠기를 의미하는 사칠기沙漆器라는 용어가 사용된 기록(태종실록, 태종 7년 1월 19일)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자기의 종류인 청자, 분청사기, 백자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며, 백자는 백사기白砂器, 자기, 사기라고도 하였다. 도자기라는 용어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순종실록부록’(순종 7년 5월 16일)이며, 오늘날에는 자기 및 사기, 질기를 지칭하는 일반적으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친숙한 화분과 농촌 체험장 도자기는 주요 용도는 그릇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식물을 식재하는 화분으로 친숙하다. 식물의 자랄 수 있는 용토를 담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하는 기능과 함께 식물과의 비율, 색깔, 모양 등을 통해 식물의 관
10여 년 전 타이완 신주현新竹県 신푸新埔 곶감 농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칼은 곶감을 깎기에 알맞게 만들어진 칼이었는데, 200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조상들이 고안하고, 사용했던 칼이 대대로 전해지면서 사용되고 있었다. 타이완 진먼섬金門島에서는 과거 중국과의 전쟁 때 중국군이 발포한 포탄피를 칼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역시 농가용, 요리용 등 용도에 맞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주문해서 제작한 칼에는 주문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취향이 배여 있고, 이것은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고, 소장품적인 가치가 있다. 대장간 칼은 수공예와 판촉 가치 높아 아이디어와 사연이 배어 있는 칼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칼에 밀려나고 있다. 공장에서 접목용 칼, 채소 수확용 칼 등 용도별로 대량 유통되는 칼은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구입이 가능해서 대장간 칼을 대체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칼의 경우 품질이 우수하고, 사용하기가 편리해서 농가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나, 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에 요리사 중에는 칼에 대해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칼을 용도에 맞게 주문하고, 사연이 담긴 칼을 소장하거나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칼 중에는 특정인을 위한 이름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한국계 한지 아티스트의 방문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 끝에 한국 방문길에 칼을 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나무를 이용한 작품 활동을 하고, 대학교에서 수업할 때 대나무를 쪼개야 하는데 미국의 칼로는 대나무가 제대로 쪼개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나무를 쪼개는 칼은 칼등이 두껍고, 칼날에서 등에 이르기까지의 경사 각도가 적당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판매하는 칼 중에는 그런 칼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의 대장간을 방문해서 한국서 가져간 칼을 보여주면서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대장간에서 만들어 준 것은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한지 아티스트의 칼에 대한 사정을 듣고 나니 딱해서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전통시장에서는 스테인리스 칼이나 중국산 칼이 대부분이었다. 국내산 칼이 조금 있었으나 대나무용 칼은 없어서 대장간을 수소문했다. 대장간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곳은 함평 읍장에서 장날만 영업하는 대장간이었다. 대장간에서 구비하고 있는 제품들은 많지 않았으나 필요한 칼에 관해 설명하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었다. 대나무를 쪼갤 용도의 칼이라고 설명을 하자 대장간 주인은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압화는 자연의 꽃과 잎 등을 눌러 평면으로 건조한 소재이다. 소재는 책갈피, 크리스마스카드, 엽서 등의 소형 작품에서부터 사용된 웨딩부케를 평면으로 건조한 것이나 가구 등의 장식에 활용된다. 압화의 시작은 16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생물학자들이 표본으로 압화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압화를 사랑하고 작품을 액자로 장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상류층 부인들의 우아한 취미로 정착됐고, 20세기에는 예술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 압화가 예술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후 압화는 관계자들이 조직화되면서 규모화가 됐다. 2002년에는 구례군이 제1회 대한민국압화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이 공모전은 압화 교육에 목적의식을 갖게 했고, 압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압화가 대중화됨에 따라 재료 유통, 교육 등이 활발해지면서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압화의 적용도 취미, 체험, 교육, 작품 활동 등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시장 크기를 키워왔다. 발간된 <팜앤마켓매거진 4월호>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네덜란드 출신의 근대 화가이다. 그의 초기 화풍은 인상파에 가까웠으나 후기의 화풍은 강렬한 추상성이 특징이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가진 직사각형 면과 그와 섞인 흰색과 검은색 면, 그리고 검정 선들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며, 이들 작품으로 인해 ‘차가운 추상’의 거장으로 꼽힌다. 몬드리안의 그림들을 보면 우리나라 전통 섬유공예인 조각보Jogakbo와 너무 닮았다. 조각보의 역사가 몬드리안의 탄생보다 앞서니 몬드리안이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몬드리안의 추상화에 비견될 정도로 예술성과 장식성을 갖춘 조각보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쓰다 남은 천을 활용하는 생활 속 지혜로 만들어진 것이다. 천이 귀하던 조선 시대에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붙인 조각보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크게 만든 것은 이불보로 사용됐고, 작은 것들은 예단, 혼수품 등 물건을 싸는 보자기나 밥상을 덮는 상보로 쓰였다. 문에 설치하는 발처럼 실용성과 장식성이 함께 이용되기도 했다. 조각보는 천이 풍부한 오늘날에도 한국 전통 패치워크Korean traditional patchwork로 사랑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