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지역 오이재배는 70년대 오이 노지 조숙 재배부터 시작하여
접목오이 재배기술, 전국 최초 연동하우스 지중난방 시설 등을
공주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이은복 과장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과장은 “공주 오이는 지금도 맛있고 안전하게 생산되며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복 과장을 통해 공주오이의 역사성을 정리했다.
오이 주산지 형성
장기 금흥 (현 금흥동) : 이 지역에서 70년도에 유진도 씨 등 3농가가 오이 및 호박을 노지 조숙 재배를 시작했다. 재배기술은 어떠한 경로로 전파되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현 공주교도소 위치 주변이다. 73년 하우스 재배가 시작됐는데, 공주교도소가 교동에서 75년 이전해오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인 작목반 : 74년 봄 이인면 구암리에서 故 이일재 씨가 혼자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재배를 시작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다. 결혼과 함께 주택 신축과 농지를 구입하는 등 많은 소득을 올렸으나 혼자의 힘으로는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공동작업과 출하에 어려움을 느껴 70년대 후반 이일재 씨가 중심이 되어 작목반을 결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농협에서는 오이 재배기술도 미흡하고 기반이 열악한 조합원들인 작목반원들에게 대나무 하우스 설치와 비닐 구입 등 운영에 필요한 자금 대출을 꺼려했다. 그러자 작목반장인 이일재 씨가 전 작목반원들의 보증을 섰고, 어렵게 작목반을 결성하여 수년간 높은 소득을 올리는 도중 뜻하지 않는 기상재해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다.
많은 작목반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영농자금 대출 자금은 고스란히 보증인 몫으로 남아 신혼의 보금자리와 피땀 흘려 마련한 농지를 처분하고도 모자라 10여 년 넘게 대출금을 상환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일재 씨는 연작지에서 실생묘 재배에 한계를 느끼던 중 오이의 접목기술을 익히기 위해 80년대 초반 전남 고흥군 포두면 포두단지 오이 재배 한 농가에서 무보수로 일했다. 그곳에서 오이 접목기술을 익혀 공주 지역에 보급한 결과 다시 오이 재배는 증가하여 98년 25㏊에 이르렀다.
80년대 대나무로 지어졌던 하우스는 80년대 후반부터 철골 온실로 바꾸었다. 90년대 초반 일본 벤치마킹에 의한 수동식 측창 개폐기를 자체 제작 설치함으로써 많은 노동력을 절감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충남 농업기술원에서 기존 전남 구례 등 일부 지역에서 사용됐던 지중 난방을 보완했다.
새롭게 설계하여 많은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94년도 공주시에 의뢰하여 이은복 과장은 전국 최초로 이일재 농가의 연동하우스에 엑셀 호스를 지하 35∼40㎝에 매설했다.
지중난방 매뉴얼도 없어 이은복 과장이 직접 주관하여 관리한 결과 정식 후 수확기를 단축하고 에너지 절감은 물론 높은 수량과 고품질 오이 생산으로 소득증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저온기 고품질 오이 재배기술은 농촌진흥청 시범사업으로 확대되어 농가 소득을 높이는데 공헌했다.
<팜앰마켓매거진 5월호>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