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은 언제 봐도 가슴 설레는 풍경화이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생기 넘치는 예쁜 풍경이면서 휴양지처럼 고요하며 편안함을 준다. 더구나 내장사, 백양사, 강천사 등과도 근접하여 나만의 여행 관광지로 누구나 한 번쯤 와 봤을 것이다.
오월의 하루, 유물, 유적뿐 아니라 우리 농업농촌을 지켜나가는 순창군 복흥면 지역을 찾았다. 백제 무왕 37년에 창건됐다던 구암사가 있는 복흥면 지역은 그야말로 멋짐이 폭발하는 농촌이면서 농부들의 부지런함도 노출되는 풍경이다. 이곳 복흥면이 좋아 농업농촌을 지키며 보이지 않게 봉사활동도 끊임없이 펼치고 있는 최경만 대표의 집을 방문했다. 한우 전문 농장인데도 앙증스러운 꽃들이 식재되어 정원의 맛을 보여주면서 힐링할 수 있는 치유 농장 공간이었다.
최경만 대표의 아내는 봄 쑥을 캐서 쑥떡을 만들었다며 따뜻한 차와 함께 권했다. 테라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도 센스 있는 한우 농장 풍경에 빠져 멍 때리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만큼 대화보다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농촌 풍경이 위로를 전하는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뷰가 좋은 위치에 있는 최 대표의 한우농장에서는 건테크(건강+재테크)하는 기분이 들었던 하루였다.
도예학과를 졸업한 아내는 “순창군 복흥면이 너무 좋다. 한우도 키우면서 좋아하는 꽃과, 유실수, 관상수 등도 농장 곳곳에 심어서 가꾸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때론 사는 즐거움을 도자기나 접시를 만들어서 표현하기도 한다. 복흥면에 사는 것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잘 쉬는 법을 아는 최경만 대표의 농장 풍경은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처럼 부부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우를 전문적으로 사육하면서 틈틈이 농촌 생활의 희로애락喜怒哀樂를 나무 가꾸기를 통해 표현하고, 혹은 도자기, 돌, 접시 등에도 마음을 적기도 한다. 잘 쉬는 법을 아는 이들 부부를 보면서 도시인들이 추구하는 귀농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싶어, 부러웠다.
최경만 대표는 “순창군 복흥면에는 천년고찰 구암사도 있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과 서편제 판소리 창시자 박유전 선생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군대 제대로 해보지 않은 농사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순창군 복흥면의 농부로서 자부심을 갖고 농업인들과 함께 뛰고 있다”고 말했다.
85년도부터 농사 시작
지금 현재는 한우 사육 전문 농장이다. 최경만 대표는 군 제대 후 지난 85년부터 이 지역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순창군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아 신기술 농업도 접목했다.
“그 당시 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시니까 농사일이 힘드셨죠. 그래서 도와드리려고 시작했는데, 제가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오히려 부모님께서 더 고생하셨죠. 하하하.”
최 대표는 청춘을 다 받쳐 농사짓다 보니 고추농사를 2만 평까지 재배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어떤 작목이든 어떻게든 해냈고, 이 지역의 모범농가로 돋보였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재배 면적을 줄이고 집약적 농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첨단하우스를 도입하여 수박, 참외, 고추, 풋고추 등을 재배했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이 추운 지역인데, 첨단연동하우스에서 작목을 재배하려니 난방비 부담이 엄청났다. 고소득은 올릴 수 없었지만, 융자금은 갚을 정도의 농사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3년째 되던 해 폭설로 인해 하우스가 망가졌다. 남은 부채는 어떻게든 갚아나갈 수 있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해 농업에 대한 의지가 꺾였다.
재해보험도 없던 시절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발생했다. 그해 겨울은 참, 뼈아프게 서글픈 날들이었다.
4h 시절의 인연이 큰 도움
“남들처럼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부모님께서 물려준 재산도 없었지만,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 다시 살아갈 수 있었던 계기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었죠. 80년 대 순창군 4h연합회장과 전북 4h연합회 사무국장을 했던 인연으로 저를 믿고 응원해 주던 주위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완전히 암흑이었던 불행의 시작에서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꺼내준 사람들이 바로 4h 시절의 인연이었죠.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를 통해 ‘농촌에서 꿈을 펼쳐봐야겠다’는 의지가 다시 솟았죠.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4h 회원, 농촌지도소(농업기술센터) 관련 기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다시 뛰었습니다.”
최경만 대표는 그 당시 정책 자금으로 17마리를 구입했고, 현재는 250두 정도 사육하고 있다.
가족 부양은 축산업밖에 없다
농촌에서 해 보지 않은 작목이 없을 정도로 원 없이 농사를 해 봤지만, 농촌에서 가장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작목은 한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우를 사육하면서 농협 안성교육원 등에서 교육받을 때 한우 선도농가들을 방문하면 ‘한우 농장이 단정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고, 여유롭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깨달았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뭔가 의욕을 가지고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생각처럼 뜻대로 안 됐을 때 도움 주셨던 분들을 잊을 수 없죠. 특히 그 당시 박상우 농식품부 차관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지역의 등대불이 돼라! 지역 축산업의 성장과 발전도 이끌어 나가는 선도 축산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격려가 큰 힘이 됐죠. 열심히 노력해서 대출금도 갚고 과수 농장도 넓혀 나갈 수 있었죠.”
좋은 한우 개량에도 박차
“이제 한우도 관행적인 사육으로는 돈 되는 축산업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우 개량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경만 대표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한우 개량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좋은 한우를 생산하는 사육기술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 앞으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4년 7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