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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편집장의 글> 농촌정책의 기준, 다시 ‘사람’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촌정책 전환을 위한 전략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지금까지 추진해 온 농촌정책의 한계가 적지 않게 드러난다.

 

연구진은 그동안 농촌정책이 물리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주민 체감도를 높이고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청년층 유출, 생활서비스 접근성 격차가 누적된 상황에서 시설 확충이나 단편적인 소득지원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농촌정책은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보고서는 읍·면 단위 ‘통합 서비스 실행 법인’ 설립과 농촌서비스 협약제도 도입, ‘읍·면 통합 서비스 플랫폼’ 조성 등을 제안한다. 읍·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도 다시 정립하자는 내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조직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과연 농촌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사업이 생기면 조직이 만들어지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이 필요해진다. 사업 기간이 끝난 뒤 누가 책임지고 운영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남는다.

농촌에는 이미 마을회와 주민자치회,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 농협, 각종 협의체와 사회적경제 조직 등이 있다. 새로운 실행 법인과 플랫폼을 더하기에 앞서 기존 조직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책의 성패는 조직의 숫자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얼마나 바꿨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농촌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농촌경제정책의 대상이 제한적이었고 기업 지원도 창업 단계에 집중돼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농촌경제를 기업의 공급사슬과 가치사슬, 다양한 주체의 협력과 거래가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는 관점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농촌경제 혁신지구와 K-미식·헤리티지 벨트 조성, 기업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등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농촌에서 어렵게 창업한 사람이 왜 몇 년을 버티지 못하는지, 농산물을 가공해 제품을 만들어도 왜 판로 확보가 어려운지, 청년은 왜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농촌기업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인증과 사업인지, 안정적인 판로와 자금, 인력 확보와 규제 개선인지도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특히 농촌융복합산업의 진입 조건을 완화하고 도시 소재 기업까지 ‘연대협력 사업자’로 정책 대상에 포함하자는 제안은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농촌과 강한 후방연계를 가진 도시 소재 기업을 ‘연대협력 사업자’로 정책 대상에 포함해 도농 간 경제협력을 촉진하고 도시기업의 농촌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을 넓히는 과정에서 정작 농촌에서 생산하고 가공하며 일자리를 만들어 온 농업인과 농촌기업의 몫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농촌정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농촌이어야 한다.

 

도시기업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면 농촌기업과 농업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도시기업이 정책 지원의 또 다른 수혜자가 되고 농촌은 원료와 공간만 제공하는 구조가 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농촌경제 활성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계인구’ 정책에서도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보고서는 정주인구 감소와 달리 체류인구와 관계인구 증가, 농업 외 경제활동 확대, 관광·여가·환경 기능의 부각 등 새로운 변화가 농촌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정주민과 관계인구가 공존하는 미래형 농촌생활권을 육성하고 농촌 유학과 ‘4도 3촌’ 생활방식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농촌을 찾고 머무는 사람을 늘리는 것과 실제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삶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병원과 약국이 없어지고 아이를 보낼 학교마저 사라지는 농촌에서 체류인구가 늘었다는 것만으로 지역이 살아났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농촌정책의 첫 번째 기준은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농촌에서 농업을 지키고 있는 농업인이 정책의 주변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연구진은 농촌을 단순한 농업 생산공간이나 기존 주민 중심의 정주공간으로만 다루는 정책 접근에서 벗어나 생활·생산·환경·문화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그렇다고 농촌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농업이 무너지면 농촌의 경관도, 먹거리도, 지역공동체도 유지하기 어렵다. 농촌관광과 미식산업, 농업유산 역시 농업과 농업인이 존재해야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농촌정책의 전환이 ‘농업에서 농촌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농업을 단단하게 지키면서 농촌의 경제·복지·문화 기능을 넓혀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정책을 많이 했는데 왜 주민은 변화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는가. 그 답을 또 하나의 사업과 조직에서 찾기 전에 농촌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농업인은 무엇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려 하는지, 청년은 왜 농촌을 떠나는지, 주민에게 정말 필요한 생활서비스는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이미 만들어 놓은 시설과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농촌정책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책의 이름과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먼저 보는 것, 농촌정책의 진짜 전환은 거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 기사는 월간 팜앤마켓매거진 2026년 9월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발행인 | 문학박사 최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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