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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농업/로컬푸드

맛을 지키는 농부, 유종천 정읍시복숭아연구회장

“제맛이 들기 전에는 절대 수확하지 않는다”

“나는 농사를 절대로 짓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전북 정읍시에서 약 6,300평 규모의 복숭아 과원을 경영하는 유종천 정읍시복숭아연구회장은 농업과는 거리를 두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인생은 그를 다시 농촌으로 불러들였다. 처음 시작한 사과 농사는 태풍으로 무너졌고, 다시 일으켜 세운 과원도 또 한 번의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농업을 포기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다시 과수원으로 돌아왔다.

두 번의 태풍과 실패를 견딘 끝에 선택한 작목이 복숭아였다. 이제 그는 정읍을 대표하는 복숭아 농업인이자 지역 농가의 기술 교류와 화합을 이끄는 정읍시복숭아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원심 농촌지원과장은 “유종천 회장은 ‘맛이 우선’이라는 확고한 철학으로 정읍 복숭아의 품질을 이끌어 온 농업인이다. 연구회 회원들과 재배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고, 회원들의 신뢰도 두터운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읍시복숭아연구회는 회원 간 기술 교류가 활발하고 현장 실천력이 뛰어난 연구회다. 농업기술센터와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품질 향상과 신기술 보급에 앞장서며 지역 복숭아 산업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의 태풍 후 시작한 복숭아 농사

유종천 회장은 농사를 시작하기 전 의류매장에서 일하며 장사를 배운 뒤 직접 옷 가게를 열었다. 농사와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의류매장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잠시 쉬었지만 어린 자녀를 둔 가장은 다시 생계를 고민해야 했다.

 

그 무렵 임대로 나온 사과밭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규모는 약 6,300평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땅을 마련할 형편은 아니었다. 과원을 임차해 농사를 시작했다. 농업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젊은 패기와 성실함으로 과원에 매달렸다.

 

그러나 첫해부터 강한 태풍이 과원을 덮쳤다. 과원의 대형 철탑 7개가 쓰러지고 성목 300여 그루가 뿌리째 뽑혔다. 한 해 농사를 망친 정도가 아니라 과원 자체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오기 하나로 과원을 다시 일으켰다. 쓰러진 시설과 나무를 정비하고 다시 농사를 지었다. 태풍 피해를 입은 과원이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생산 기반을 어느 정도 복구했다.

 

첫 번째 태풍 피해를 극복한 뒤에는 임대계약 기간을 채우고 조금이라도 투자비를 건져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사과 수확을 앞둔 시기에 또다시 태풍이 찾아왔다. 다시 일어서려던 희망도 사라졌다. 결국 사과 농사를 정리했다. 농업에 대한 마음도 떠났다.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약 2년 동안 일했다. 가진 자본이 없었던 만큼 몸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농사와 완전히 멀어지는 듯했지만, 어느 날 다시 임대로 나온 복숭아밭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이나 태풍 피해를 경험한 뒤였지만, 또다시 과수 농사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사과가 아니라 복숭아였다.

 

“제맛이 들기 전에는 절대 수확하지 않는다”

복숭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수확 적기를 지키는 것이다. 복숭아는 품종마다 고유한 숙기가 있다. 외관에 붉은색이 올라왔다고 해서 바로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일 전체에 충분히 색이 돌고 품종 고유의 향과 당도가 형성돼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

 

일부 농가는 출하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복숭아를 일찍 수확하기도 한다. 출하시기를 며칠 앞당기면 가격을 조금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회장은 주변 농가가 먼저 출하하더라도 복숭아의 숙기가 충분히 차기 전까지는 따지 않는다.

“다른 농가가 먼저 따서 팔아도 저는 기다립니다. 복숭아는 제맛이 들었을 때 따야 합니다. 숙기를 지키지 않고 일찍 따면 기본적인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외관만 보고 일찍 수확하면 과육이 단단하기만 하고 당도와 풍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과원에서 먼저 익은 복숭아도 바로 수확하지 않는다. 벌레나 새의 피해 위험이 있더라도 소비자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린다. 과원에서 생산한 복숭아가 품종에 관계없이 맛있는 이유도 이 원칙 덕분이다.

 

건강한 토양과 햇빛·바람이 맛 결정

맛있는 복숭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확 시기만큼 과원 환경도 중요하다.

유 회장이 가장 먼저 꼽는 조건은 건강한 토양이다. 복숭아나무는 물에 약하다. 배수가 원활하지 않으면 뿌리가 상하고 수세가 떨어지며 나무가 쉽게 죽는다.

 

나무 사이의 간격도 넓게 유지한다. 유 회장의 과원은 열과 열 사이가 약 6∼6.5m, 나무와 나무 사이는 약 5m다. 다른 농가의 과원보다 비교적 넓은 간격이다.

단위 면적당 나무 수를 늘리면 초기 생산량을 높일 수 있지만, 나무가 성장한 뒤에는 가지가 겹치면서 햇빛과 바람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햇빛이 부족하면 착색과 당도가 떨어지고 통풍이 나쁘면 병해충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유 회장은 나무 수를 늘리는 것보다 한 그루 한 그루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무 높이도 작업자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춘다. 대부분의 작업을 사다리 발판 두세 단 정도에서 할 수 있도록 수형을 관리하고 있다. 이는 작업 편의를 넘어 농촌 고령화와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정읍시농업기술센터에 감사

유종천 회장이 이끄는 정읍시복숭아연구회에는 5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연구회는 정기적인 교육과 현장 견학, 재배 기술 교류를 통해 정읍 복숭아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회원들의 참여 열기도 높다. 교육이나 회의를 열면 전체 회원의 3분의 2가량이 참석한다. 새로운 품종과 재배기술, 병해충 관리, 수정률 향상, 출하 동향 등의 정보를 공유한다. 회원들은 우수농가와 선진지를 찾아 시설재배와 품종관리 사례도 배운다. 먼저 기술을 도입한 농가의 경험을 공유하고 신규 농가는 기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시행착오를 줄인다.

 

유 회장은 “우리 회원들은 정읍 복숭아를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교육이나 현장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연구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힘쓰는 총무와 임원진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회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신규 농가의 정착을 돕는 임원들의 역할이 연구회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정읍시복숭아연구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정읍시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이 있다.

정읍시농업기술센터는 복숭아농가의 현장 문제를 함께 살피고 교육과 시범사업, 품종 및 재배기술 정보를 제공해 왔다. 기후 변화와 병해충, 수정 불량 등 현장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가와 함께 해결책을 찾고 있다.

 

유 회장은 “정읍 복숭아 농가들은 자부심을 갖고 농사를 짓고, 정읍시농업기술센터에서 현장을 찾아 지도하고 연구회 활동에도 힘을 보태준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기술과 사업을 연결한다. 농가는 교육받은 기술을 과원에 적용해 성과로 보여주고, 그 결과를 다시 다른 회원들과 공유한다.

 

유종천 회장은 임차농으로 출발해 20여 년 동안 과원을 일궜고 마침내 자신의 농지를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지켜온 것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었다. 토양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게 유지했다. 작업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나무도 낮게 키웠다. 무엇보다 복숭아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복숭아는 제맛이 들었을 때 따야 합니다. 아무리 크고 예뻐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가 다시 찾지 않습니다. 농부가 맛을 포기하면 농사도 끝나는 겁니다.”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6년 8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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