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의 포도 재배는 16세기경 미국 동부해안에 도착한 영국, 프랑스 및 스페인 등의 유럽의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하였다. 구대륙의 포도 문화에 익숙한 이주민들은 신대륙 각지에 야생 포도가 자라고 원주민들이 과실을 이용하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야생 포도는 품질이 좋지 않고 호취향fox flavor이 강하여 이주민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다.
구대륙의 품질이 우수한 유럽종 포도를 도입하기 위해 유럽에서 포도 재배 전문가를 초빙하여 중부 및 동부 지역에 시범 재배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실패 원인은 북부 지역의 겨울철 저온에 의한 동해, 중남부 지역의 고온 및 다습에 의한 병해충 특히 노균병, 흰가루병, 새눈무늬병(흑두병) 등의 피해가 심했다. 포도뿌리혹벌레phylloxera의 피해는 심각했으나 당시에는 포도뿌리혹벌레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였고, 19세기가 되어 나무가 죽는 원인을 구명했다.
포도뿌리혹벌레는 당시 신대륙에만 있던 해충으로 잎이나 뿌리에 혹을 형성하여 포도를 고사시키는데, 특히 유럽종 포도에 치명적이었다. 포도뿌리혹벌레는 미국 야생 포도와 함께 유럽 각지로 도입되어, 유럽의 포도 재배에 큰 피해를 주었다. 미국 야생 포도종을 저항성 대목으로 개발하기 전까지 유럽 포도원의 60~90%를 황폐화시켜, 아일랜드 감자 역병과 함께 세계 농업 역사상 2대 재앙으로 불리고 있다.
한편 캘리포니아주는 태평양 서해안에 위치하여 유럽의 지중해 연안과 비슷한 기후로 16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에서 유럽 포도 도입으로 재배면적이 확대되었다. 19세기에는 스페인에 대한 멕시코인의 반란에 의해 포도원이 파괴되는 등 많은 어려움 있었으나, LA에 이주한 프랑스 이민자들이 최초의 상업적 포도원을 개원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북부 지역의 금광 발견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포도주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샌프란시스코 주변까지 포도 재배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포도주용 품종 이외도 생식용 및 건포도용으로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와 ‘톰슨 시들리스’ 등을 재배하였다. 그러나 포도의 과잉 생산, 포도뿌리혹벌레 및 피어스병Pierce disease 피해, 20세기에 시행된 금주법1920~1933년 등으로 큰 곤란을 겪었다. 금주법이 해제되면서 다시 포도 재배가 확대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이 지역의 포도 생산량이 330만 톤을 넘어서 전 미국 생산량의 90%를 점유했다.

최근에는 서부 해안의 오레곤과 워싱턴주까지 유럽종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겨울철 추위 때문에 내한성이 강한 미국종 ‘콩코드’ 품종을 주스용으로 주로 재배하며 포도주용 유럽종 품종 중 비교적 내한성이 강한 ‘화이트’, ‘리즈그린’ 및 ‘카베르네쇼비뇽’ 등도 재배한다.
남아메리카의 포도 재배는 1525년 스페인이 멕시코에서 시작한 이래 1550년경에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등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수입하는 포도주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재배를 금지하였고, 카톨릭교회에서 성찬 의식 목적으로만 재배를 허용하였다. 독립 후 이탈리아와 스페인 이민자들에 의해 포도 재배는 빠르게 증가했다.
최근 자본과 과일 유통망을 갖춘 미국의 과수업체들은 칠레 등 남미에 포도원을 조성하고 우량 품종과 선지 재배 기술로 고품질 포도를 생산하여 북반구의 단경기인 겨울철에 포도 및 포도주를 수출한다.
자료: 농촌진흥청
다음 호에서는 <포도재배 역사, 중국과 일본>에 대해 연재한다.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5년 3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